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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야기

장르적 쾌감을 느끼고 싶다면 - 나이브스 아웃_ 글래스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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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이란 제목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1편이 나온지 좀 되기도 했지만(2019년)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흥행하지도 않았거든요. (80만명 정도) 관객수가 작은 건 아니지만 당시 핫하던 다니엘 크레이그와 크리스 에반스가 나온 걸 생각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긴 하죠. 

 

저는 극장에서 1편을 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추리'라는 장르에 충실한 대중영화를 보긴 힘들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추리라는 키워드로 관객들을 쪼는 맛이 있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모든 트릭이 영화 중반에 다 드러나는데도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던 영화였습니다. 추리의 트릭도 매력적이지만 그것 말고도 주변 인물들과의 기묘한 밸런스로 러닝타임을 꽉 채우며 관객들을 알차게 긴장시켰죠. 이 영화 이후로 라이언 존스는 단순히 '라스트 제다이'의 감독이 아닌, 정말 영화를 찍을 줄 아는 감독으로 기억에 박혔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넷플릭스로 신작이 나왔습니다. 

 

일단 전편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이 작품에 거리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따로 봐도 감상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누아 블랑'이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탐정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면 그걸로 OK 입니다. 그 사실도 영화에서 다 말해주니 그냥 영화에 집중만 하면 되겠네요. 

 

뒤통수에 느껴지는 쎄-한 느낌

 

사건은 세계적인 테크 기업 '알파'의 CEO인 마일스 브론이 기묘한 퍼즐로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의 면모가 하나같이 남다릅니다. 진보적인 정치가로 상원의원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주지사, 소위 '남성인권'을 강조하는 마초(?) 유튜버와 뭔가 수상쩍은 그의 아내, 심심하면 물의를 일으켜서 매니저에게 휴대폰을 압수당하는 한물간 모델, 테크기업 '알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동료까지. 뭔 친구들이란 게 이렇게 근본 없이 다양한가 싶지만 미국 사회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고, 라이언 존스라는 감독의 취향을 파악한다면 이 설정에 스토리 외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눈치 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지독하게 노골적으로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중입니다. 일견 스마트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헛점 투성이인 '마일스 브론'은 자연스럽게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합니다. 항상 총을 차고 다니며 남성인권을 외치지만 막상 자기 엄마한테 꽉 쥐여 사는 '듀크'는 시대에 역행하는 남성 우월주의자들을 우스꽝스럽게 비꼬고 있습니다. 짐짓 진보적인 척 하지만 선거를 위한 돈줄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가식적인 정치인 '클레어'도 빼놓을 수 없죠. 툭하면 트위터에서 차별적 언사를 내뱉는 패션스타 '버디'는 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옆으로 봐도 일론 머스크 메타포라서 재미있었던 마일스 브론

 

이런 이질적인 집단이 단순히 우정으로 모였을리가 없죠. 그들에겐 공통의 목적이 있고, 영화는 그 러닝타임을 그들을 비꼬는데 온 힘을 다해 할애합니다. 탁월한 추리극은 훌륭한 양념이 되어 주고요. 

 

나이브스 아웃 1편을 본 사람이라면 이번 '어니언 글래스'에서도 비슷한 플롯을 차용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셨을 겁니다. 진보 / 보수 / 페미 / 남성우월 / PC 등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돈 앞에서 눈이 뒤집혀 순식간에 하나의 목적으로 단결하고 그 속에서 브누아 블랑과 주인공이 그걸 보기 좋게 깨뜨려버리는 서사를 갖고 있죠. 어떻게 보면 전래동화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런 플롯은 라이언 존스 감독의 고집과도 같습니다. 감독에겐 본인만의 불변의 정의가 있고, 그 정의를 어떻게든 영화 안에서 실현하려는 욕망이 느껴집니다. 

 

의도는 달라도 목적은 같은 그들

 

다행히 그 욕망이란 게 다수의 대중과 일치하기에 흥행도 하고 속편도 낼 수 있는 거겠죠?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플롯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추리'라는 장르가 선사하는 쾌감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와 조각들을 모아 마침내 완성하는 과정 속에서 다소 진부한 플롯은 오히려 그 추리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권선징악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탐정이라고 하면 보통 정의의 편이기도 하구요. 

 

온통 과거로 회귀중인 영화들 속에서 이런 창의적인 시도는 귀한 기회입니다. 넷플릭스 플랫폼으로 나와서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도 아니니 킬링타임 용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아니, 극장에 걸렸어도 흥행했을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네요. 컨셉추얼한 장르적인 쾌감을 느끼고자 하시는 분들께는 이런 영화만한 게 없을 겁니다. 영화를 재밋게 보셨다면 1편도 강추하니 참고하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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