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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야기

처연한 형태의 무언가 -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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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그리는 건 영화라는 존재의 의무이자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을 고기처럼 도륙내는 영화일지라도, 투쟁과 생존으로 뜨거운 영화일지라도 그 안에 아주 잠깐이라도 사랑은 있습니다. 사랑없이 그런 에너지를 낼 순 없어요. 힘들게 투자자를 얻고, 밤 새워 각본을 쓰고, 의문에 시달리며 영화를 찍는 과정에도 사랑은 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런 지난한 과정을 십수편 째 반복할 순 없겠죠. 

 

박찬욱의 사랑은 늘 각별합니다. 혼란으로, 금기로, 애뜻함으로, 환상적으로. 사랑이란 주제에 대해 늘 그만의 독보적인 미장센이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떻게 이런 절묘한 제목을 지었을까 싶어 감탄하게 됩니다. 헤어질 결심이라니. 마지막 송서래(탕웨이 분)의 선택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랑은 때로 주객이 전도됩니다. 사랑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내가 사랑을 위해 존재하게 됩니다. 그 폭풍에는 실로 괴물같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금기는 그리 효과적인 장애물이 아닙니다. 심지어 살인마저도요. 그 괴물같은 에너지의 폭주 속에 주인공은 행복한 파탄으로 치닫습니다. 기꺼이 눈물 흘리며 연옥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각자의 연옥 안에서 평생 잊을 수 없을 이름을 곱씹게 될 미래가 잔잔히 그려집니다. 

 

기억되고자 하는 의지는 본능을 가볍게 밟고 넘어갑니다. 엇갈리고 지나치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와중에도 시선만은 서로의 흔적을 끊임없이 쫓습니다. 형사에게 미제사건은 어떤 의미일까요. 영원한 기억은 과연 사랑과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요. 마지막 그 둘의 엇갈림이 안타까운 여운으로 남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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