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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야기

우리 시대의 기둥에게 - 어른 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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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무엇일까요. 법적인 어른이 된 뒤에도 이 질문은 계속 숙제였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가진 후에도 이 질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과연 어른인 것인가. 심지어 40이 넘은 지금에서도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해보라면 자신이 없습니다. 대체 어른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가 마땅히 '어른'의 칭호를 얻게 되는 걸까요. 

 

연휴가 지나고 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다큐 하나를 찾았습니다.

경남 MBC에서 방영된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입니다.

 

분명히 이상한 제목입니다. '위인 김장하' 도 아니고, '인물 김장하' 도 아니고, '영웅 김장하' 도 아닌. '어른 김장하' 라니요. 하지만 다큐를 다 보고나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래서 '어른'이라는 단어가 필요했구나.

이래서 '어른'이라는 단어가 있는거구나.  

 

김장하 선생은 팔순을 앞둔, 허름하고 오래된 한의원을 운영하는, 오래된 동네라면 으레 한 명쯤은 있는 점잖은 노인입니다. 하지만 이 분이 사천/진주/경남에서 남긴 족적은 그야말로 독보적입니다. 19세에 한의사 자격증을 땄고, 23세부터 지역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평생에 걸친 장학사업을 시작합니다. 불과 40세에 고등학교를 세웠고, 8년 후엔 그 고등학교를 고스란히 국가에 헌납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정들이 평등을 요구하며 일어났던 형평운동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경남 최초 여성운동의 대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지역 신문 창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친일반민족 인명사전의 집필을 후원했으며, 지역 문인들을 후원하는 일에도 아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일생을 정리하면서는 경남 대학교에 40억이 넘는 거액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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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일생에서 놀라운 점은 그 분의 잔잔함이었습니다. 2시간이라는 다큐 내내 김장하 선생의 음성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평생에 걸쳐 모든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큐는 대부분 김장하 선생의 주변인으로 채워집니다. 늘 이사장 직함을 십 수개씩 달고 있었지만 그가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용히 봉투를 건넬 뿐.

 

 

돈으로 보면, 요즘 관점에서 보면 김장하 선생은 그저 지역 유지에 머무르실 분은 아닐 것입니다. 운영하던 한의원으로만 이 정도의 지역 사업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가였다면 전국 규모의 의료재단을 세우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권력에 관심이 있었으면 유력 정치인도 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분은 모든 것이 가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욕심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시간이 멈춘듯한 작은 한약방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말 없이 돈봉투를 건네는 것이었죠. 

 

그가 평생을 걸쳐서 바친 건 한의원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지역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장학금을 받은 많은 학생들은 이제 각자 분야의 거두가 되어 은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장학생에게도 덕담을 잊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흔한 진리지만 김장하 선생 입에서 나오니 그 의미가 각별해집니다. 

 

 

하늘에 가만히 뜬 달을 떠올립니다. 수백 km의 속도로 맹렬하게 지구를 돌고 있지만 우리가 볼 때 달은 그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하늘에 떠있을 뿐인 당연한 장면에 불과하죠. 김장하라는 어른이 그런 존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맹렬하게 일렁이며 존재를 과시하는 태양이 아닌, 수백년만의 등장을 화려하게 수놓는 혜성도 아닌, 어두운 하늘에 은은하게 가만히 떠 있는 작은 달처럼. 우리가 되어야 할 어른의 모습으로 가만히 떠 계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감히 그렇게 될 수는 없더라도 지향점이 있으면 우리는 그곳으로 끌리기 마련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일생이 더 많은 사람들의 지향점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유튜브에서 '어른 김장하'를 검색하면 무삭제 버전으로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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