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중고차를 하나 샀습니다. 아내도 나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아내가 회식을 하거나 개인적인 약속이 있으면 제가 아이들 픽업도 다니고 해야 하는데 차가 하나면 여러모로 불편하더라고요. 제 직장이 좀 격오지라서 차 없이는 반차내고 나오기도 힘들어서 말이죠. 예전부터 늘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타고 있는 차가 10년에 18만키로가 넘어서 이 차를 제가 개인적으로 쓰고 와이프한테 좋은 차를 새로 뽑아줄까 싶은 생각이 있었더랬죠.
원래 갖고 있는 분양권을 팔아서 사줄까.. 했었는데 아시다시피 요즘 상황이 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분양권을 팔질 못하니 따로 제가 몰 중고차를 뽑게 됐습니다.
차종은 처음부터 정해져있었습니다. 유지비를 생각하면 무조건 경차여야 했지만 모닝이나 스파크는 너무 좁고, 실용성을 생각하면 레이밖에 없더군요. 그런데 레이, 가격 만만치 않습니다. 주행거리 10만키로 미만에 700만원 미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조건을 돌려봤는데 쉽지 않더군요. 원레 세컨카로 인기가 많은지라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제가 생각하는 조건을 맞추는 후보가 몇 개 없었습니다.
그 중에 다른 차들보다 월등히 조건이 좋은 차를 발견했습니다. 16년식 69000키로, 사고이력 / 교체이력도 없고 소유권 이전도 1차례, 보험처리이력은 30만원도 안되는 수리 1건이 전부였습니다. 보험 이력이 비어있는 기간도 없구요. 인천에 있는 엠파크였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낚시매물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집에서도 가까우니 속는셈치고 나서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차 상태가 꽤 좋습니다. 트렁크 바닥 시트도 걷어보고, 안전벨트도 당겨보고 엔진룸도 봤는데 깨끗합니다. 핸들에 손 떼도 직진 잘 되고, 엔진소리 나쁘지 않고.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지만 그리 흠잡을데도 없어서 그대로 계약하기로 합니다.
서류 작성하고 보험 가입하고 사인하고 송금하니 이제 차는 제 것이 됐습니다.
차 본지 1시간만에 말이죠.
차를 뽑았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뭔가 허무하고 허탈합니다. 아무리 경차라지만 차 한대 사는게 이렇게 간단할 일인가 싶더군요. 그렇습니다. 돈만 있으면 벤틀리든 페라리든 너무너무 간단한 일인 것입니다. 자산 상황이 잘 풀려서 아내 새 차를 근사하게 뽑아줬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 차선책으로, 정말 필요에 쫓겨서 싸고 싼 차를 골라서 사고 싶지도 않았던 작은 차를 사게되니 기분이 과히 즐겁진 않더군요.
차만 그럴까요? 돈은 확실히 삶의 허들을 낮춰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민 안하고, 재지 않고, 흔쾌히,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재력은 언제 생각해도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엔카 뒤적이는 것도 은근 힘든 일이거든요. 차 값을 송금할 때 복잡한 생각들(이게 최선인지, 이 돈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는지)이 머리를 뒤적이는 것도 싫은 일입니다.
제가 투자를 시작하고 경제적 자유를 쫓기 시작한 이유가 다시 명징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기 싫어서였지."
레버리지에 묶인 무거운 처지지만. 그래도 손 끝 하나 움직일 힘이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겠죠. 아내 새 차를 멋지게 뽑는 그날을 이 블로그에 빨리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머지 않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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