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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비움이라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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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모처럼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둘째를 가지면서 근 2년이 넘도록 못해오다가 글램핑으로 시도를 해 봤네요. 갔던 글램핑장은 그리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어서 글램핑장에 대한 리뷰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캠핑 첫 시도는 첫째가 4살 즈음이었습니다. 보통 아빠들이 그 시기에 많이들 하는 것 같네요. 캠핑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녹록치 않습니다. 짐을 꺼내고 차에 테트리스를 하고 북적이는 캠핑장에서 짐을 꺼내고 텐트를 치고 세팅을 하고나면 정말이지 그만한 중노동이 없지 싶습니다. 다음날 온갖 장비들을 다 정리하고 텐트를 힘겹게 접어 차에 다시 테트리스를 하고 집에 와서 그 많은 짐들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걸 생각하면 대체 이런 걸 왜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극한의 테트리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또 생각나고 그 번거로운 과정을 또 헤쳐가며 캠핑장으로 향하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캠핑을 가면 일단 가족들이 너무나도 좋아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있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글램핑으로 다시 캠핑을 하면서 느낀 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머리를 비우기 좋다는 점이죠.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캠핑은 기본적으로 중노동입니다. 내 집 마련 쉽지 않은 것처럼 캠핑가서 텐트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사무실에서만 일하다가 땀 쭉 빠지는 중노동을 하게 되면 수많은 생각들이 날아가고 오직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자신을 느낍니다. 운동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운동은 순전히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목적이지만 캠핑에서의 노동은 가족들을 향한 것이니만큼 그 집중도가 남다릅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활동에 몰입하게 되면 그동안 날 괴롭혔던 회사에서의 업무들, 투자에서의 문제들 같은 고민들을 떠올릴 겨를이 없어집니다. 늘 한켠에 숨어서 메모리를 잡아먹던 백업 프로그램들이 꺼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동안 만큼은 주식프로그램도 볼 수 없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기사들도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캠핑 온 그 순간은 몸도 체력도 시간도 모두 가족을 위한 자원이니까요. 어쩌면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가 내게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캠핑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불멍이죠.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다보면 머리 속 독소가 빠지는 느낌입니다. 확실히 불꽃에는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복잡한 세상에서 생각을 놓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불꽃 앞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차마 불꽃 속으로 던져넣지는 못해도 잠시 생각의 끈을 느슨하게 놓을 순 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불멍을 하고나니 훨씬 머리가 상쾌해진 느낌이네요.

 

 

 

내가 바꿀 수 없는 걸로 고민하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 고민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닙니다. 운동이든 캠핑이든 불멍이든 고민의 텐션을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텐션을 가열차게 당겨서 고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주말에 떠난 모처럼의 캠핑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비움의 가치를 알려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둘째도 어느정도 컸겠다. 내년 봄부터는 다시 다녀볼 생각입니다. 그때는 캠핑 포스팅으로 많이 올려봤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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