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생은 배우입니다. 배우라지만 대중들이 아는 그런 유명한 배우는 아니고요. 늘 가족들 걱정을 등에 지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겨우 그 걱정을 벗을랑 말랑하는, 그런 배우입니다. 하지만 이제 전 동생을 '배우지망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젠 어엿한 배우니까요. 그렇게 자부할 정도로 동생은 이제 누가봐도 의젓한 배우가 됐습니다. 이제 가족의 엄격한 눈으로 봤을때도 그의 길은 더 이상 모호하지 않으니까요.
얼마 전 부모님 댁을 찾으면서 동생과 얘기를 나눴을 때, 동생이 '매력'에 대한 얘기를 하더군요. 사람사는 그 어디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쪽 동네는 '매력'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전 이 얘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명한 영화제 신인상으로 시작한 배우가 있고, 그 상에서 아쉽게 탈락한 배우가 있는데 지금 더 잘나가는 건 그 상에서 탈락한 배우라고요.
의아했습니다. 유명한 영화제에서 신인상까지 받았으면 연기력 하나는 공히 인정받은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얘기가 '매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대충 수상실적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매력이 중요한 세계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들 사는 평범한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똑같은 업무를 해도 이상하게 누군가 더 끌리고 마음에 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동생과 얘기를 하면서 부서에서 같이 일하는 한 후배를 떠올렸습니다. 항상 약속도 많고, 오라는 데도 많은데다가 상사들이 지켜보는 눈빛도 다른 친구죠. 일하는 것도 모나지 않게 잘 하지만 이 친구에게서는 세심한 배려에 익숙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주변에 누가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잽싸게 낚아챈다거나, 크게 화낼 일도 허허 웃고 넘긴다거나, 누구나 피하는 껄끄러운 일에 선의를 보이는 모습을 자주 보이더군요. 중요한 건 그에게서 보이는 모습들이 일부러 연출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자연스러운 영역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몸에 배어있는 모습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그 후배가 전사에 소문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회사라는 한 집단에서 다소 눈에 띄는 정도인 거죠. 그런데 흔히 '압정사회'라고 불리는 예술인들의 세계에서의 매력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눈빛으로 페로몬을 뿌리고 다니는 뭐 그정도 수준이 되어야 할까요?
생각을 이어가다가 닿은 지점은 '같이 일하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그 무게가 다릅니다. 교대시간 잘 지키고 인수인계 잘하는 정도면 충분한 아르바이트의 세계가 있겠지만 세상 특이하고 예민한 사람들 천지인 예술인들의 세계에서는 그 난이도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게다가 예술인들이라면 누구나 자신 안에 강고한 에고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이 에고를 지키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에고 넘치는 지인들과 모나지 않게 어울리는 건 차원이 다른 난이도의 '매력'일 것입니다. 그것도 몸에 배어있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요. 억지로 몇 번 어울리는 건 누구나 다 눈치채기 마련이니까요.
이게 쉬워보인다면 한 번 가만히 생각해보시죠. '내가 과연 같이 일하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는가'에 대해서요. 누구나 본인의 편익이 우선이고 나의 입장이 먼저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 또한 '매력'을 발산할 만큼 누군가를 크게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와 타인 간의 거리에서의 절묘한 조율감. 이건 타고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살아온 배경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 다 변변치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노력해야 한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가식과 위선도 평생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본질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매력이란 것도 몸에 밴 가식과 위선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의식해서 가식을 떨고 위선을 행해보려 합니다. '매력'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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